사실 등하원 길은, 알고 보면 내가 아이에게 나를 보여주는 시간이더라고.

맨발로 크록스 신는 거, 난 그게 그렇게 싫더라. 양말에 크록스를 신어도 싫고, 흰색 크록스가 얼마나 안 닦았는지 거뭇거뭇해 보이면, 그게 또 그렇게 싫더라. 아이들도 느낀다는 거.

어떤 엄마는 예쁘게, 혹은 깔끔하게 차려입고 등하원 길에 오는데, 우리 엄마는 집에서 입던 그대로의 편한 복장에 맨발 크록스를 신고 온다는 거지. 물론 아이들이 그걸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아. 그런데 그게 매일 반복되잖아. 그러다 어느 날 아이가 무심코 이렇게 말한대. "엄마, 엄마도 저렇게 입고 오면 안 돼? 저 친구 엄마 되게 예쁜 거 같아."

별거 아닌 말 같지만, 이 나이 아이들은 이미 비교를 시작했다는 거야. 친구네 엄마, 우리 엄마, 친구네 아빠, 우리 아빠. 이 비교가 아이 마음속에서 자기 자신에 대한 감정으로도 연결돼. "우리 엄마는 왜 저렇게 안 입을까"가 어느 순간 "나는 왜"로 바뀔 수도 있다는 거지.

어른들 눈엔 그냥 옷차림인데, 아이 눈엔 그게 자기 자존감의 일부가 되는 거야.

사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선생님들에게 굳이 그렇게까지 보여줄 이유는 없어. 그런데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멋있고 예쁘게까지는 아니어도 적어도 운동화에 청바지 정도는 입고 등하원하러 갔으면 어땠을까 싶어.

사실 시간 문제가 아니더라고. 전날 밤에 입을 옷 하나, 신을 신발 하나만 현관 앞에 미리 꺼내두면 끝이야. 아침에 고민할 필요도 없고, 더 일어날 필요도 없어. 운동화 한 켤레를 그냥 현관에 상시 놔두는 것만으로도 크록스 신을 일이 확 줄어.

별거 아닌데, 그 별거 아닌 게 매일을 바꿔.

그러니 한번 생각해보자는 거야. 내가 언제 내 자신에게 그렇게 많이 투자를 했을까. 등원하는 길과 하원하는 길은 어쩌면 아이에게는 출퇴근 같은 거라 생각해. 내가 멋있으면 내 아이도 멋진 모습으로 등원하고 하원하게 되는 거고.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하원 길에는 크록스를 신지 않게 됐어. 현관에 운동화 한 켤레, 그거 하나면 충분했어.